그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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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석준옵이랑 나눴던 대화 중에 내가 먹는 게 곧 내가 된다는 이야기를 되새기고 있다. 석준옵은 14킬로가 빠진 상태로 나타나서 날 경악시켰는데(심지어 저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생각했다), 그의 체중감량엔 좀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으나 결론은 제대로 만들어진 좋은 음식을 먹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였다.

나는 여행 끝에 큰 고민이 생겼는데, 벼룩에 물렸는지 빈대에 물렸는지 사지에 된통 두드러기가 나서 잘 낫지 않기 때문. 피부과를 바꿔가며 물어봤으나 원인이 무언지 의사도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처방해 준다고 하였다. 지난 주말엔 요플레를 먹었더니 다시 증상이 심해져서 먹는 것 때문인가 했는데, 이번 주말엔 햇빛 잘드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었더니 다시 심각하게 올라오는 것이다. 그럼 이건 햇빛 알러지란 말인가! ㅠ_ㅠ 게다가 피부과 약은 얼마나 독한지, 먹으면 우선 잠이 심히 쏟아져서 종일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고, 이렇게 잠이 오다보니 기운이 없는 건 당연.

대체 무엇을 계기로 내 immune system이 요 모양으로 망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막상 내가 이 꼴을 당해보니 아토피 등으로 고생하는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며 얼마나 하루하루가 우울할까 싶다. 역시 자기가 당해봐야 남의 어려움이나 아픔을 헤아린다. 더욱이 이사 후 얼굴도 뾰루지 만발에 엉망진창이므로 이대로 가다간 정말 대인기피 안 걸리면 신기한 노릇이다. 내가 내 팔다리를 보면서 징그러워 죽겠는데 타인은 오죽할까.

그래서 내일부터는 다시 도시락을 싸서 먹어볼까 싶으나 몹시 귀찮다. 아웅.

다른 의미에서, 회사 생활에 있어서 망가진 immune system은 어쩌란 말이냐. 이제서야 생각해보니 그는 정말 훌륭한 보스여서, 우리가 해야 될 공부를 미리 다 하시고는 적절한 시점에 떠먹여 주셨는데 심지어 그 친절한 숟가락도 안 받아먹고 앉았었다. 정치가 필요없고 원칙만 있으면 되는 앞으로 만나기 힘들 희안한 보스.

있을 때 잘하란 말은 어느 순간, 어느 관계에나 통하는구나. 어짜피 우리 모두는 대체 가능한 존재, 언제 그랬냐 싶게 또 적응하겠지만 도대체가 맘이 싱숭해서 견딜 수가 없다. 본인의 행복을 찾아가신다는데 말릴 길도 없고.

나는 그가 가기로 맘먹은 다음에야 그와 비슷한 시간에 출근을 하고, 머슥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이게 뭐 별 거라고 말 안듣고 땡깡이었을까. 아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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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행복해서 이래도 되나 싶었던 지난 일요일과 달리 이번 주말은 맘이 평화롭지 못하다. 나갈 준비를 하고, 그를 기다리던 마음과, 너무 좋았던 날씨, 내 손에 느껴지던 체온. 며칠만에 그 때 느꼈던 그 마음이 갑자기 현실감이 없고 나의 행복같지 않아서, 그가 사준 핸드폰 껍데기만 만지작 만지작거렸다.

ㅈㅇ이는 무려 열 번째 여자친구를 만들려고 하니 다 허무하다고 이제 장가가고 싶다고 했다던데 ㅋㅋ 좋은 마음도 결국 타이밍일지 모르겠다. 우리가 서로 사람 만들어준 누군가는 다른 이에게 평생토록 참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다들 언젠가는 철나고 어른된다. 사람마다 때가 다을 뿐.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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